진리를 알기 위한 질문을 중단하지 말라
『당신이 오실 그분이니이까? 아니면 우리가 또 다른 분을 기다려야 하리이까?』 (눅 7:19)
질문은 “알고자 하는 바를 얻기 위해 묻는 것”이다. 그리하여 궁금한 점을 해결하거나 해결할 단서를 찾게 된다. 질문은 동서고금을 통틀어 가장 뛰어난 교육법 중 하나이며, 모든 학문의 시작이다. 성경에서도 여러 질문들이 나온다. 질문자의 의도에 따라 정직한 마음으로 알기를 원하는 질문과 상대방을 넘어뜨리기 위한 의도로 하는 질문이 있다. 이브에게 접근한 뱀(마귀)은 창세기 3장에서 긍정적인 질문으로 이브에게 의심을 던졌다. 예수님의 지상 생애 동안에도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주님을 시험하기 위해 질문을 자주 했다. 알기 위함이 아니라 의심을 주거나 넘어뜨리기 위한 불손한 의도들이었다. 그러나 감옥에 있던 침례인 요한의 질문(『당신이 오실 그분이니이까? 아니면 우리가 또 다른 분을 기다려야 하리이까?』 - 눅 7:19)과, 다마스커스로 가는 길에 구원받은 후 바울이 했던 질문(『주여, 내가 어떻게 하기를 원하시나이까?』 - 행 9:6), 그리고 빌립보 간수의 질문(『선생님들이여, 내가 구원을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이까?』 - 행 16:30)에 대해 정확한 답변이 주어졌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그 말씀을 그대로 믿고 따르는 것이다. 말문이 트인 어린아이들은 끊임없이 질문공세를 하지만 어른이 되어 가면서 질문이 없어진다. 성도들은 주님을 사랑하는 이들이다. 사랑하면 알고 싶어진다. 알면 기꺼이 생을 드리고 싶어진다. 그렇기에 최상의 질문들을 매 순간 주님께 드려서 지상에서의 삶을 아낌없이 쓰다 가야 한다. 헌신이 주저된다면 주님을 온전히 모르기 때문이다. 헌신이 없다면 경배도 찬양도 쓸모가 없게 된다.
"너희 몸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롬 12:1)."